신약(새 언약)은 예수님 초림 때 다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신약이 예수님 초림 때 성취 되었다고 주장하는 이들에게)
성경책은 구약전서와 신약전서가 있다.
구약전서는 약3,500년 전 모세로부터 시작하여 말라기까지 약1,500년 동안에 걸쳐 모세의 율법과 이스라엘의 역사와 시가서와 선지자들의 예언 등 총 39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구약이라는 말은 옛 언약 또는 옛 약속이라는 말로서, 출19:5~6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지니라. 는 말씀에 근거한 것이다.
신약전서는 예수님이 구약의 약속대로 유대 땅에 구원자로 오셔서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였던 세례요한 때까지 구약의 율법시대를 끝내시고(눅16:16), 마1:1의 말씀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인 신약시대를 여신 것으로서, 마태복음을 비롯한 4복음서와 역사서와 서신서와 요한계시록의 예언서 등 총 27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예수님 이후 약 100년에 걸쳐 기록된 책이다.
신약 성경에는 예수님께서 구약을 성취하신 실상의 말씀과 예수님의 새 계명과 사도들이 행한 역사와 교회들을 위한 사도들의 서신서와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이루실 요한계시록의 예언 등이 기록되어 있다.
신약이라는 말은 새 언약 또는 새 약속이라는 말로서 눅22:20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는 말씀에 근거한 것이다.
예수님께서 신약 곧 새 언약을 세우신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했을 때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지키면 세계 열국 중에서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으로 삼아 주시겠다고 한 조건부 언약(출19:5~6)을 지키지 못하고 파해 버렸기 때문이다.
이 근거는 렘31:31~32과 히8:7~9의 말씀에 있다.
히8:7~9 저 첫 언약이 무흠하였더면 둘째 것을 요구할 일이 없었으려니와 저희를 허물하여 일렀으되 주께서 가라사대 볼지어다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으로 새 언약을 세우리라. 또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열조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저희와 세운 언약과 같지 아니하도다 저희는 내 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므로 내가 저희를 돌아보지 아니하였노라.
이와 같이 신약은 구약시대의 하나님의 선민이었던 이스라엘 백성이 구약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세워진 것이고, 이제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은 신약시대의 선민 영적 이스라엘 백성인 기독교인(그리스도인)들이 계1:3~6의 말씀대로 지켜야만 제사장 나라가 되고 거룩한 백성이 되는 조건부 약속인 것이다.
계1:3-6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와 그 보좌 앞에 일곱 영과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그러므로 신약(새 언약)은, 예수님이 초림으로 오셔서 구약을 성취하신 것처럼,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이루어질 약속이며, 이 때 이 언약을 지키는 자들이 구원을 받고 제사장나라와 거룩한 백성이 될 수 있는 것이며, 이들이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들이 되는 것이다(계14:12).
계14:12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그러나 오늘날 교계의 일부 신학자들이나 목회자들은 신약이 예수님 초림 때 십자가를 지심으로 이미 이루어졌다고 주장한다.
만약 그들의 주장대로 신약이 예수님 초림 때 이미 이루어졌다면 신약의 요한 계시록의 예언도 이미 그 때에 다 이루어졌어야 했는데 왜 오늘날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이 이미 성취된 요한계시록의 예언을 제대로 풀지 못하고 이럴 것이다 저럴 것이다, 라고 제각각 백인백색으로 해석하여 점들을 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미 이루어진 일이라며 이럴 것이다 저럴 것이다, 라고 새삼스럽게 해석해야 할 필요가 없는 것 아니겠는가? 이것이 신약이 초림 때 성취 되지 않았다는 확실한 증거가 아니겠는가?
또한 요한계시록의 예언이 이미 초림 때 이루어졌다면 그와 같이 각색으로 점을 칠 이유도 없고, 계시록20장의 예언대로 첫째 부활도, 마지막 백 보좌 심판도 끝이 나고, 계시록21장의 예언대로 이 땅에 눈물도 사망도 없고 애통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없는 영생하는 천국이 이미 이루어져 있어야 하지 않았겠는가? 그런데 아직도 죄와 사망이 세상에서 왕 노릇하고 있지 않은가? 이것이 어찌 신약이 이루어진 것인가?
그럼에도 신약이 이미 예수님 초림 때 이루어졌다고 주장하는 신학자들이나 목회자들은 참으로 하나님께 회개하고 자기 자리에서 내려와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뻔뻔하게 그 자리에 계속 남아 있는 자들은 예수님 초림 때의 마귀의 자식들이요(요8:44), 뱀의 새끼들이었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마23:33)과 다름없는 지극히 교만한 자들이 아니겠는가?
그 당시 그들은 천국 문이신 예수님을 가로막고 자기들도 예수님께 가지 않고 예수님께 가려는 유대교인들까지 못 가게 철저히 봉쇄해 버렸다.
마23:13 화 있을 찐 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도다.
요한 계시록의 예언 속에는 예수님의 재림노정과 주 재림 때의 신앙인들이 들어가야 하는 천국의 비밀이 있는데 이것을 무시해 버리고 계시록의 예언을 가감해 버리면 계22:18~19의 말씀처럼 너도 나도 다 천국에 들어 갈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계22:18-19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 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이 얼마나 두렵고 떨리게 하는 말씀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목회자들이 계시록을 무시해 버리고 계시록의 천국비밀을 교인들에게 알려주지 못한다면 초림 때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교인들을 천국 문이신 예수님께 가지 못하도록 막은 일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럼에도 계시록에 대한 대답이 궁해진 일부 신학자들은 칼빈 교리의 전통을 쫒아서 계시록 무용론까지 주장하고 있으며, 신약이 초림 때 성취되었다는 어이없는 주장으로 그것을 뒷받침 해주고 있는 것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구약은 예수님 초림 때 요19:30의 말씀대로 성취하신 것이고, 신약은 예수님 재림 때 계21:6의 말씀대로 성취되는 것이다.
요19: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이 말씀이 구약을 이루신 말씀이다. 그러므로 구약인들이 믿어야 하는 것은 2천 년 전에 구약의 약속대로 오신 예수님과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흘리심을 믿음으로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이었다.
계21:6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 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이 말씀은 신약을 이루신다는 말씀을 예언으로 하신 말씀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신약인들이 믿어야 하는 것은 신약의 약속(예언)대로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죄사함을 받는 것과 예수님이 다시 오실 것과 다시 오시는 예수님이 이땅의 천국을 완성하실 것과 그 일이 이루어졌을 때 그 이루신 실상을 믿고 다시 오시는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목회자들을 위시한 모든 기독교 신앙인들은 예수님께서 이루실 신약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온전히 깨닫고 거듭나서 새 언약을 지킴으로 하나님과 예수님이 이 땅에 이루시는 하나님 나라를 보고 들어 갈 수 있는(요3:3~5) 거듭난 천국의 제사장들과 거룩한 백성이 되어야 할 것이다.
'열린성경 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문학적 전통신학과 순수 정통신학 (0) | 2017.01.19 |
---|---|
이 세상은 누구에게 속한 것인가? (0) | 2016.09.28 |
신앙인의 목적과 소망 (0) | 2016.09.23 |
고난을 통한 축복 (0) | 2016.09.13 |
세상 염려와 재리의 유혹 (0) | 2016.08.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