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적 전통신학과 순수 정통신학
1. 인문학적 전통신학과 순수 정통신학의 비교
인문학이란 간단히 요약하면 사회과학을 제외한 인류의 역사, 철학, 문학, 문화 예술, 종교 등을 통하여 인간의 삶의 가치와 행복의 원리를 찾아내고 그것을 더욱 향상시켜 나가며, 인간의 본질적 정신세계를 탐구하며 발전시켜 나가는 학문이라 할 것이다.
20세기가 물질문명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물질문명을 기반으로 한 정신문명의 시대가 될 것이라는 것이 미래학자들의 예측인데, 이에 부응하며 회자되고 있는 것이 바로 인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인문학이란 전적으로 사람에 의한 사람을 위한 사람의 학문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러한 인문학을 뛰어넘는 학문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신에 의한 신과 사람을 위한 신의 학문인 곧 신학이다.
그런데 소위 인문학적 전통신학이라는 것은 신이 아닌 사람에 의한 사람을 위한 사람의 신학으로 변질되었다는 것이며, 이것을 인문학적 전통신학이라고 말 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신학을 인문학화 시켜버렸다는 것이다.
필자가 오늘날의 신학을 인문학적 전통신학이라고 감히 말하는 분명한 이유와 증거는 이렇다.
순수 정통신학이란 신에 의한 신과 사람을 위한 신의 학문이며, 이것은 신의 계시로서 기록된 성경을 통해서 신의 생각과 마음과 뜻을 신이 가르쳐 주시고 사람으로 하여금 신의 뜻에 따르게 하여 온 인류에게 사랑과 평화의 세상을 주시려는 학문이다.
그런데 오늘날의 소위 인문학적 전통신학은 신학을 연구하는 수많은 신학자들이 신이 만들어 주신 성경을 해석함에 있어서 신의 계시가 없이 자기 나름대로의 영감과 지식과 지혜를 가지고 각자의 언어(교리)로 만들어서 자의적 주장을 하게 됨으로 언어(교리)가 혼잡한 오늘날의 무너진 바벨탑을 쌓게 되었고 서로의 뜻이 다 다르기 때문에 분쟁과 분열의 역사를 되풀이 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 세계의 전쟁의 역사는 구약시대의 이스라엘과 이방나라와의 전쟁을 위시해서 십자군 전쟁, 미국의 청교도들의 인디안 대학살, 독일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 이스라엘과 아랍국간의 중동 전쟁, 필리핀 민다나오 섬의 가톨릭과 이슬람교간의 40년 전쟁, 최근 중동의 IS에 의한 분쟁에 이르기까지 전쟁의 약 80%는 종교의 분열로 인한 것이라고 한다.
이것이 바로 신의 뜻에 반하는 사람에 의한 사람을 위한 사람의 신학으로 변질되어버린 인문학적 전통신학의 결과요 일반 인문학에서 볼 수 없는 인류를 멸망으로 이끌어 가는 엄청난 파괴력을 가지고 있는 학문인 것이다.
2. 인문학적 전통신학과 순수 정통신학의 차이
인문학적 전통신학과 순수 정통신학의 차이를 가장 명확하게 알 수 있는 성경의 한 구절을 보자!
사55:8~9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위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생각과 그 길은 사람의 생각과 그 길 보다 하늘이 땅보다 높은 것같이 그 차원이 높다는 것이다.
인문학적 전통신학은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사람에 의한 사람을 위한 사람의 학문인지라 여기에는 신의 뜻 보다는 사람의 자의적인 뜻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이를 두고 성경에서는 다른 복음 또는 사람의 계명이라고 한다.
갈1:7-8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
막7:6-9 가라사대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 도다 하였느니라.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유전을 지키느니라. 또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유전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도다.
이에 반해 순수 정통신학은 전적으로 성령의 계시로써 성경을 통해 전적인 신의 생각과 마음과 뜻에 대해 가르침을 받고 신의 뜻대로 행하게 하는 신의 학문이며, 여기에는 사람의 자의적인 생각이나 뜻이 개입할 여지가 전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순수 정통신학을 다른 말로는 계시신학이라고 한다.
이 정통 계시신학이야말로 온 세계의 인류를 사랑과 평화의 세계로 창조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하늘의 문화를 창달 할 수 있는 재료인 것이다.
고전2:9-10 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갈1:10-12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이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라.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3. 인간의 생로병사의 문제에 대한 인문학적 전통신학과 순수 정통신학과의 차이
인문학적 전통신학은 일반 세상의 인문학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제반 문제를 다루고는 있지만 인간의 생로병사의 근본적 원인과 해결방법을 명확하게 규명해 내지 못하고 있다.
아무리 세상의 인문학이나 사회과학 등 어떤 학문이나 심지어 인문학적 전통신학이라 할지라도 인간의 생로병사의 비밀을 온전히 깨달아 알지 못하는 한 인간의 수명이 70이요 강건하면 80이라고 한 시편의 말씀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물론 신학자들 중에는 나름대로 성경을 근거로 이 문제를 규명했다고 주장할 수는 있겠지만 그들의 주장이 진리에 바탕을 둔 명확한 것이었다면 오늘날의 신앙세계가 이토록 부패하고 침체의 늪에 빠져들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순수 정통신학에서와 같이 신의 계시로서 깨달은 인간의 생로병사의 비밀을 명확하게 깨닫게 되어 그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 있었다면 오늘날의 신앙세계는 이미 온 세상을 덮었을 것이고 신의 뜻이 이미 이루어졌을 것이며, 그것은 신의 뜻이 곧 인류의 생로병사의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순수 정통신학이라는 계시신학이 아직 종교세계를 평정하지 못하고 인문학적 전통신학이라는 철옹성 같은 거대한 제도권에 막혀있는 상황에서 오늘도 인류는 생로병사의 굴레에서 안타깝게 스러져 가고 있는 지경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의는 언젠가는 반드시 승리하는 법이며, 조만간 순수 정통신학이 세상의 모든 학문을 뛰어넘어 인류세계를 사랑과 평화와 풍요의 세계로 창조해줄 것임을 확신하는 것이다.
또한 순수 정통신학인 계시신학은 진정한 신의 학문으로서 신의 인류에 대한 무한하신 사랑을 나타내 보이시는 것이며, 인류의 생로병사의 비극적 사슬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신과 인간이 하나 되어 영생복락을 누릴 수 있게 해주는 인류 최고의 진리의 학문인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더 이상 인문학적 전통신학에 매어 있을 것이 아니고 지금부터라도 순수 정통신학인 계시 신학 앞으로 용기 있게 나와야 할 명제인 것이다. 우리의 영원한 생명을 위해서 말이다.
'열린성경 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류는 신이신 하나님을 왜 알아야만 하는가? (0) | 2015.08.19 |
---|---|
이담이 인류 최초의 사람(조상)이라는 해석과 주장에 대한 반론. (0) | 2015.08.17 |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 받기를 원하는가? (0) | 2015.07.31 |
네 오른 눈이나 오른 손이 실족케 하거든 빼어버리고 찍어 버리라? (0) | 2015.07.27 |
하나님에 대한 오해 (0) | 2015.07.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