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계 이슈

사도신경의 음모와 문제점

진리의 강물 2015. 5. 14. 11:51

 

                               사도신경의 음모와 문제점

 

 

 

 

 

많은 교회에서 신도들이 별다른 관심 없이 무심코 신앙고백을 한다고 외우는 사도신경의 음모와 문제점이 있다면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그것이 과연 무엇인지 성경을 통해서 확인해보고자 합니다.

 

성경은 참과 거짓을 분별할 수 있는 유일한 잣대이며 하나님의 생각과 사람의 생각이 다르며 하나님의 길과 사람의 길이 다르며 그 생각과 길이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있다는 것을 생각에 두고 말씀을 묵상하시기 바랍니다.(사 55:8-9)

 

첫째: 사도신경은 예수님의 사도들이 만든 것인가?

오늘날 교회에서 신앙고백이라고 외우는 사도신경은 예수님의 사도들이 만든 것이 아니며 예수님과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의 사후에 천주교의 니케아 공의회의 자칭 사도들이라고 하는 성직자들이 만들어낸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사실을 잘 모르는 대부분의 교인들은 ‘사도신경’을 예수님의 사도들이 만든 것이라고 오인하고 있다는 데에 있습니다. 사도신경 전문(全文)은 예수님의 사도들이 기록한 신약성경 어디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예수님의 사도들이 만든 것이 아니라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사도신경의 내용 중에는 성경에 맞는 부분도 있으나 맞지 않는 부분들도 있기 때문에 이것을 예수님의 제자들인 사도들이 만들었다고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신경이라는 말은 교인들의 신앙고백에 합당한 제목이라고 할 수 없으며, 교회의 전통상 반드시 신앙고백을 해야 한다면 ‘사도신경’이라 하지 말고 ‘성도의 신앙고백’ 이라는 제목을 붙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사도신경이라는 제목은 성도들이 외우는 신경이 아니라 사도들이 외우는 신경이라는 강한 뉘앙스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모든 성도들이 다 사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둘째: 예수님은 과연 누구에게 고난을 받고 죽으셨는가?

사도신경 중에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라고 되어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우리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 보아야 합니다.

 

마16:21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

 

막8:31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저희에게 가르치시되

 

눅9:22 가라사대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하시고

 

마17:12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임의로 대우하였도다. 인자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리라 하시니

 

위에서 예수님은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고 죽으실 것이 아니고 유대인들(장로들, 대제사장들, 서기관들)에 의해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제자들의 기록을 통해서 명확하게 예언을 하셨으며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엘리야의 심령으로 온 세례 요한이(눅1:13-17)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고난을 받고 광야로 쫓겨남 같이 예수님도 그들에게 고난을 받게 될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위의 말씀과 같이 예수님의 예언대로 예수님이 자기의 백성인 유대인들에게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했다는 제자들의 증언을 보겠습니다.

 

* 예언의 성취: 사도들의 증언

행 2:22-24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바에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거 하셨느니라. 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어 준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 박아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게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행3:12-15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기이히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저를 넘겨주고 빌라도가 놓아주기로 결안한 것을 너희가 그 앞에서 부인하였으니,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자를 부인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 주기를 구하여,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로라.

 

행4:10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행13:26-27 형제들 아브라함의 후예와 너희 중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이 구원의 말씀을 우리에게 보내셨거늘, 예루살렘에 사는 자들과 저희 관원들이 예수와 및 안식일마다 외우는바 선지자들의 말을 알지 못하므로 예수를 정죄하여 선지자들의 말을 응하게 하였도다.

 

살전2:15 유대인은 주 예수와 선지자들을 죽이고 우리를 쫓아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게 대적이 되어.

 

위의 예수님의 제자들인 사도들의 증거를 통하여 예수님께서 분명히 이스라엘의 목회자들과 백성에게 고난을 받고 죽을 것이라고 하신 예언이 그대로 성취가 되었다는 사실을 성경에 명명백백하게 확실히 증거 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행 7:52-53 너희 조상들은 선지자 중에 누구를 핍박이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저희가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너희가 천사의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하니라.

 

또한 위의 말씀과 같이 시대마다 이스라엘 백성의 조상들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나 의인들을 죽여 왔으며, 심지어는 자기들의 구원자로 오신 의인이신 예수님까지 죽였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죄인들의 죄를 대속해 주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것을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잡히시던 날밤에 감람산에 올라가서 밤늦도록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이 잔을 피하게 해 주시라고 그러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시라고 말입니다.

 

눅22:41-44 가라사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사자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돕더라.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 방울 같이 되더라.

 

예수님이 대제사장과 서기관 바리새인들에게 잡혀가서 빌라도의 사형 언도를 받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것이라는 그 사실을 밝히 알고 계시면서도 빌라도에게 고난 받고 죽을 것이라 말씀하지 않고 왜 이스라엘 백성인 유대인들에게 고난을 받고 죽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는지를 우리들은 깊이 통찰을 해봐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아래 설명에 의해서 명쾌하게 그 답이 나옵니다. 성경을 보면 과연 예수님이 예언하신 대로, 이스라엘 백성은 빌라도가 예수님을 석방하려 하자, 예수님을 죽인 피의 대가를 자신들은 물론 자기 자손들에게 까지 돌리겠으니 예수님을 죽여 달라고 하며 민란을 일으키려고까지 했습니다.

 

이에 대해서 빌라도는 자기는 책임이 없다는 뜻으로 물그릇을 가져다가 자기는 무죄하다며 손을 씻고 난 후 예수님을 죽인 책임을 너희가 당하라고 하면서 사형집행을 내렸던 것입니다. 성경(마 27:20-26)에 있는 내용 그대로입니다.

 

마 27:20-26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무리를 권하여 바라바를 달라 하게 하고 예수를 멸하자 하게 하였더니, 총독이 대답하여 가로되 둘 중에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주기를 원하느냐 가로되 바라바로소이다. 빌라도가 가로되 그러면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를 내가 어떻게 하랴 저희가 다 가로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빌라도가 가로되 어쩜 이뇨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저희가 더욱 소리 질러가로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하는지라. 빌라도가 아무 효험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가로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백성이 다 대답하여 가로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 찌어다 하거늘, 이에 바라바는 저희에게 놓아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이렇게 해서 예수님께서 자기 백성이었던 유대인에게 고난을 받으시고 죽으실 것이라는 예수님의 예언이 확실하게 성취가 된 것이며 예수님의 제자들인 사도들이 이 사실을 위의 성경구절처럼 증언하였던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자기 백성에게 죽게 될 것임을 포도원의 농부들을 비유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마 21: 33-39 다시 한 비유를 들으라 한 집주인이 포도원을 만들고 산울로 두르고 거기 즙 짜는 구유를 파고 망대를 짓고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 실과 때가 가까우매 그 실과를 받으려고 자기 종들을 농부들에게 보내니, 농부들이 종들을 잡아 하나는 심히 때리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로 쳤거늘, 다시 다른 종들을 처음보다 많이 보내니 저희에게도 그렇게 하였는지라. 후에 자기 아들을 보내며 가로되 저희가 내 아들은 공경하리라 하였더니, 농부들이 그 아들을 보고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고 그의 유업을 차지하자 하고, 이에 잡아 포도원 밖에 내어좇아 죽였느니라.

 

위의 비유를 풀어보면 집주인은 하나님이시고 포도원은 이스라엘 백성이 있는 교회이며 농부들은 유대교의 목자들이며 이 목자들이 하나님이 보낸 종들 곧 선지자들을 핍박하고 죽이므로, 포도원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아들 예수님을 다시 보내자 농부들이 하나님의 상속 자라 하여 예수님을 죽였다는 내용의 비유인 것입니다.

 

과연 여기서 누가 하나님의 상속자인 아들 예수님을 죽였습니까? 이방인이었던 빌라도입니까? 이스라엘 백성을 치리 하던 유대교의 목자들입니까?

 

이러한 잘 못 된 사도신경으로 인해서 이스라엘 백성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엄청난 범죄행위를 빌라도에게 뒤집어 씌워 버렸으며 이 사실이 오늘날의 성도들의 마음에서 철저하게 은폐되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단 마귀의 음모였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초림 때 예루살렘 성전을 장악하고 있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뱀(사단, 마귀 : 계 20:2)이요 독사의 새끼들이라고 증거 하셨기 때문입니다.

 

마 23:33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그러므로 사도신경을 만든 자들 역시 예수님 초림 때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조종했던 사단의 악령에 의해 조종받은 자들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자들은 사도신경이 조금 잘 못 된 것이 무엇이 그렇게도 큰일이나 난 것처럼 호들갑을 떠느냐고 항변하는 자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예수님께 고난을 주고 살인한 책임을 자기들이 아닌 심부름꾼에 불과했던 본디오 빌라도에게 전가시켜버린 또 하나의 엄청난 범죄라는 사실이며, 이것을 그대로 믿고 있는 오늘날의 신앙인들 또한 하나님께 커다란 범죄(유전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똑똑한 신앙인들이라면 바로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신약성경 어디에도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았다는 말씀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빌라도가 사형을 언도했으니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은 것이 아니냐고 항변하는 자는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고난 받고 죽을 것이라고 하신 말씀을 정면으로 부인하는 예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똑바로 분별해야 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의 예언과 예수님의 사도들이 증언한 말씀(진리, 진실)을 믿을 것인가? 아니면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자칭 사도들이라고 하는 자들이 만든 거짓 내용(비 진리, 거짓말)을 믿을 것인가를 말입니다.

 

셋째, 사도신경 중의 ‘거룩한 공회’는 과연 거룩한 공회인가?

예수님 초림 때의 공회는 예수님을 잡아다가 빌라도에게 죽여 달라고 했으니 거룩한 공회라고 할 수 없으며(마 26:59), 예수님과 사도들의 사후에 사도신경을 만든 공회도 위와 같이 오류를 범한 공회이므로 거룩한 공회라 할 수 없으며, 오늘날의 공회도 회장 자리 하나 차지하려고 거액의 돈다발이 오고 가고 세상 권력을 등에 업고 온갖 추악한 짓을 자행하고 있는데 역시 거룩한 공회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도대체 사도신경의 공회를 어느 공회를 기준으로 해서 ‘거룩한 공회’라고 했는지 참으로 모를 일입니다. 그러므로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하는 교단들의 목사들은 이점을 분명하게 교인들에게 해명해야 할 것입니다.

 

넷째,‘몸이 다시 사는 것과’

이것 역시 죽어서 썩어버린 사람의 육체가 다시 살아나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것 때문에 화장을 하면 안 된다면서 화장하지 않고 시신을 묻는 묘를 쓰는 교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몸이 다시 산다는 말은 죽었던 몸이 부활한다는 말인데, 성경의 참의미는 몸은 죽어서 썩어져서 흙으로 돌아가고, 그 영혼이 부활의 때에 신령한 몸으로 부활한다는 의미인 것입니다(고전 15:51-54).

 

사람의 혈과 육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며(고전 15:50), 사람의 육체는 무익한 것(요 6:63)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우리의 죽었던 몸이 다시 산다는 것은 잘 못된 믿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몸이 다시 산다.’고 할 것이 아니라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산다.’고 표현하고 믿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내용 역시 교인들에게 말씀을 오해하게 만드는 것이므로 반드시 고쳐야 할 것입니다.

 

다섯째,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 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위의 내용의 문제점은 믿음의 대상에 대한 것입니다. 성도들이 믿어야 하는 믿음의 대상은 하나님과 예수님과 그리고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것을 부인할 자는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위의 내용을 보면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 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라고 접속사를 사용해서 성경에 없는 거룩한 공회도 믿고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도 믿는다고 고백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거룩한 공회와 성도들의 교통을 우리가 믿어야 하는 대상이라고 성경 어디에 기록되어 있느냐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을 보면 다른 복음을 전하거나 말씀을 가감하면 저주와 재앙을 받고 거룩한 성(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제하여 버리신다고 했습니다.

 

갈 1:8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찌어다.

 

계 22:18-19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 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결론으로 ‘사도신경’은 성도들의 신앙고백으로 결코 합당하지 않은 장로들의 잘 못된 오랜 유전이요 사람의 계명(마 15:1-9) 일뿐이라는 것을 깨닫고 사도신경은 폐지해야 마땅하며, 이제 교회가 바로 서도록 개혁하려면 이러한 것부터 과감하게 시정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이요(요 1:1), 말씀은 진리(요 17:17)이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 바로 서려면 오랜 전통에 입각한 장로들의 망령된 유전을 타파하고 참으로 진리의 말씀 앞에 바로서야 할 것입니다.

 

‘사도신경’은 창세기에 나오는 들짐승의 중의 가장 간교한 뱀인 사단이 아담과 하와를 거짓말로 미혹해서 하나님께서 먹으면 정녕 죽을 것이니 먹지 말라고 하신 선악과를 먹게 하여 죽게 만든 사약(死藥)과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사단에 의한 사도신경의 음모요 문제인 것입니다. 이제 우리 모두 간악한 사단의 음모에 속아서 더 이상 죄와 사망에 종노릇 하지 맙시다!

 

다행히도 요즈음 사도신경을 폐지한 교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해서 그나마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상담 전화 : 010~2948~4762

이메일 : jd144000@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