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인가, 세상 재물인가?
많은 신앙인들이 하나님과 재물 사이에서 갈등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그 이유는 아래의 말씀들이 중요한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마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눅12:19~21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신앙인들이 세상에 살면서 세상 사람들과 어울려 살다보니 세상이 주는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러운 것들이 많은지라 자연스럽게 하나님보다는 세상과 재물에 마음이 더 가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인 것 같다.
또 교회의 목사님들도 설교를 통해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면 세상에서는 축복을 받아 잘 살고 죽어서는 천국에 들어가게 된다고 하는 기복신앙을 끊임 없이 심어준다.
그리고 구약 말라기 3:10의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는 말씀을 인용해서 설교 때 자주 강조하다보니 교인들이 다른 것은 몰라도 십일 조 만큼은 잘 지켜서 많은 재물을 얻고 복 받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러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교회에 빠지지 않고 주일성수 잘하고 교회 일에 대해서 나름대로 열심히 봉사하면서 십일조를 칼같이 잘 지키며 신앙을 하는 데도 매사가 형통하지 못하고 형편이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어려움과 고통을 당하는 교인들도 많다.
만약 십일조를 드리는 신앙인들마다 말3:10의 말씀대로 다 복을 받아서 잘 살게 된다면 이 세상에 예수님을 믿지 않을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 십일조를 잘 드리고도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 복을 받지 못하는 교인들이 많을까?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신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진리의 하나님이시며(히6:18), 식언하시는 분이 아니시다(민23:19).
아무리 십일조를 잘 드려도 약속하신 복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육친의 아버지가 자식들 중에 자기의 뜻에 잘 순종하고 유업을 물려줄 만한 그릇이 되는 자식에게 기업을 물려 주는 것 같이, 영의 아버지이신 하나님도 이와 같다는 이치를 알아야 한다.
구약 역사를 보면 하나님의 선민이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대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고 하나님과의 언약을 배도하므로 이방민족에게 멸망 받고 고통 속에 빠져 살 때 하나님은 한 구원자를 보내서 자기 백성을 구원해 주시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잘 살도록 복을 주셨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점차적으로 자기들을 구원해 주시고 잘 살게 해주신 하나님에 대한 감사함을 잊어버리고 그것이 마치 자기들이 잘 나서 그리 된 것으로 여기고 하나님과의 언약을 배도하고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께 형식적으로 보이려고 많은 제물을 가지고 하나님의 성전에 나왔지만 하나님은 그 백성들이 가지고 오는 무수한 제물이 다 소용없고 내 마당만 헛되이 밟고 갈 뿐이라고 경고하셨다(사1:11~12).
이와 같이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오늘날의 신앙인들도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복을 발로 차버리고 하나님과의 언약을 배도하고 떠나므로 구원받지 못할 것을 염려하시기 때문이다.
또한 예수님에게 찾아온 부자 청년과 같이 자기 재물이 아까워 그 재물을 내 놓지 못하고 예수님을 등지고 슬픈 표정을 짓고 돌아가게 될까 염려가 되기 때문이다(마19:16~23).
결국 그 재물로 인해 구원받지 못할 수도 있기에 하나님은 각자의 심령을 감찰하시고 그 그릇에 합당한 만큼만 복을 부어주시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지금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는 것으로 족하게 여기라고 하신 것이다(딤전6:8).
또한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하신다(히13:5).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신앙을 하면서도 세상에서 누리고 싶어하는 것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 곧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바로 세상에 있는 그러한 모든 것이 다 하나님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고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고 한다(요일2:16).
그리고 우리가 세상에서 얻고 누리는 모든 것은 형적없이 사라진다고 하며(고전7:31),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들만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한 삶을 살게 된다고 한다(요일2:17).
또한 우리가 제 아무리 세상에서 한순간의 부귀영화를 누린다 한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라고 한다(시90:10).
그리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고 한다.
딤전6:17~19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특히 우리 신앙인들은 정함이 없는 세상 것에 마음을 두지 말고 그 마음을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두고 육신의 눈은 우리보다 낮은 데를 바라보아야 한다!
지금도 저 아프리카 같은 저개발 국가에는 수많은 어린 생명들이 꽃을 피워 보지도 못한 채 기아와 질병으로 안타깝게 스러져가고 있다.
또한 종교적 정치적 이념의 갈등으로 인해 세계 도처에서는 크고 작은 국가 간의 전쟁이나 내전으로 인하여 얼마나 많은 고귀한 생명들이 오늘도 희생되고 있는 가?
시리아 난민들과 아프리카 난민들을 보라! 지금도 사지에서 탈출해서 유럽으로 가기 위해 필사적으로 지중해를 건너다가 수많은 생명들이 배가 전복되어 바다에 수장되고 있지 않는 가?
그에 비하면 지금 우리는 그나마 얼마나 많은 복을 받고 살고 있는가?
하나님은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라고 하신다(요일2:15).
도대체 이 세상이 어떤 세상이기에 하나님께서 우리 신앙인들에게 이토록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고 하셨을까?
그 이유는 창세기의 아담이 뱀 곧 사단이 주는 선악과를 먹고 범죄 함으로 세상에 죄가 들어와 죄악이 관영하게 되므로 하나님은 죄인들과 함께 계실 수 없어 떠나가셨고(창6:1~6), 그 때부터 이 세상은 사단마귀에게 넘어가게 되었으며 이 세상은 아래의 말씀처럼 사단마귀가 주관하는 죄와 사망이 왕 노릇하는 세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눅4:5~7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 만국을 보이며 가로되 이 모든 권세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준 것이므로 나의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
이 말씀은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신 후 성령에 이끌러 광야에 나오신 후 마귀에게 시험받으실 때 마귀가 천하만국이 자기에게 넘어와 있다고 예수님에게 한 말이다.
이와 같이 우리 신앙인들은 사단마귀가 이 세상을 주관하고 있는 줄도 모르고 세상 사람들처럼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하는 탐심이라는 우상을 숭배하면서 살아 왔음을 이제부터라도 깨닫고 회개해야 한다(골3:5).
그래서 육적인 세상일을 생각하는 사람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영의 일을 생각하는 사람은 생명과 평안을 얻는다고 한다. 그리고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고 한다(롬8:6~7).
그러하기 때문에 사단 마귀로 인하여 죄악이 관영한 이 세상이 마지막 때가 되면 하나님이 사단마귀를 잡아 무저갱에 결박해 두었다가 잠간 동안 풀려나게 한 후 나중에는 유황 불 못에 던져 끝내신다고 하신다(계20:1~3, 계20:10).
그리하여 이 세상에서 사단마귀가 없어지면 세상에 들어왔던 죄와 사망도 소멸하고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으로 생명이 왕 노릇하는 세상으로 소성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예수님과 하늘에 있는 천국과 함께 이 땅에 임하여와서 사람에게 눈물과 사망이 없고 고통과 아픔이 없는 영원한 사랑과 평화의 천국세상을 이루신다(계21:1~6).
이를 위하여 하나은 오늘도 졸지도 주무시지도 아니하고 우리를 위하여 일하고 계심을 알아야 하며, 우리 신앙인들 또한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그 뜻을 함께 이루어가야 할 것이다.
복과 생명의 근원은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 알자!
잠22:4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그리고 하나님의 영원한 복과 생명을 얻을 수 있는 때가 다음의 말씀대로 멀지 않았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계11:15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가로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신앙을 한다 하면서도 하나님 보다는 정함이 없는 세상재물이나 쫓다가 심판 받고 사망과 영벌에 처할 것인가, 아니면 세상에서 예수님과 제자들처럼 자기 목숨을 희생하리만큼 고난을 당하지만 그 결과 천국과 영생을 얻을 것이냐를 스스로 판단해야 할 것이다. 천하보다 귀한 것은 사람의 생명이라고 한다.
마16:2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하나님과 세상 재물 양다리를 걸치는 신앙은 결단코 용납 될 수 없음을 신앙인들이라면 반드시 깨달아야 할 것이며, 양다리 신앙을 하려면 차라리 신앙을 포기하고 세상에서 자기 능력 것 잘 먹고 잘 살고 잘 누리다가 그냥 가면 될 것이다. 심판과 지옥 영벌을 각오 하고서 말이다.
생명으로 가는 문은 좁고 협착해서 그리로 가는 자가 적다고 하신 말씀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마7:13~14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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