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복음과 구원받는 믿음.
영원한 복음과 구원받는 믿음.
복음이란 흔히 문자적으로는 복 된 소식이라고 하며, 그 내용으로는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사함 받고 구원을 얻는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복음이라는 것은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며, 복음의 본질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온전히 알아야 그 복음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데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보자.
1. 복음은 무엇인가?
롬1:1~2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복음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구약)선지자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을 성경에 미리 약속하셨고 그 약속대로 구원자이신 예수님이 약속의 실상(실체)으로 오신 것을 알리는 소식이라는 것이다.
요약하면 하나님께서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예언대로 이루신 실상(예수님)을 믿는 것이 구원받는 복음이라는 것이다.
또한 예수님은 요5:39에서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해서 상고하는 이 성경(구약성경)이 곧 "나에 대해서 증거한 것"이라고 말씀하심으로 구약의 예언이 이루어져 나타난 실상이 예수님 자신이라는 것을 증거 하신 것이다.
그래서 성경에는 아래와 같은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히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으니라.
위에서 믿음이란 "보지 못한 것들의 증거"인 예언을 바라보며 믿고 있다가 그것들이 성취되어 나타난 실상을 믿는 것이라는 것이다.
또한 예수님은 요14:29에 "이제 일이 이루기 전에 너희에게 말한 것(예언)은 일이 이룰 때(성취)에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고 하신 것이다.
이와같이 "예언이 성취된 실상"에 대한 증거가 우리가 믿고 구원받는 복음이라는 것이다.
2. 신약시대인 오늘날의 복음은 무엇인가?
위에서 롬1:1~2에서 하나님께서 구약성경에서 약속(예언)하신 대로 오신 초림 예수님을 증거 하는 말씀이 초림 때의 복음이었다면, 예수님께서 신약성경에 약속하신 대로 다시 오실 예수님을 증거 하는 재림 때의 복음이 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 복음은 계14:1~4에 어린양이신 예수님이 하나님과 함께 시온산으로 재림하신다는 것과, 그 산에 처음 익은 열매로 추수되어 모여온 144,000명이 예수님이 시온산으로 재림하셔서 신약성경에 약속(예언)하신 것들을 이루시는 실상을 알리기 위해 부르는 새 노래이며, 이 새 노래가 계14:6에 나오는 영원한 복음이라는 것이다.
요약해보면 신약성경 안에는 크게 두 가지 복음이 있는데 첫째는 구약성경의 약속대로 초림으로 오신 예수님을 증거 하는 실상의 복음과, 둘째는 신약성경의 약속대로 재림하시는 예수님의 실상을 알리는 말씀이 새 노래이자 영원한 복음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신약시대인 오늘날 우리가 반드시 알고 믿고 구원 받아야 하는 실상의 복음은 계14장에 나오는 새 노래이자 영원한 복음이라는 것이다.
신약성경에는 예수님이 재림하실 것과 재림예수님께서 이루실 약속(예언)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이 총정리가 되어 있는 것이 신약성경의 유일한 예언서인 요한계시록이다.
따라서 요한계시록의 예언이 성취되어 오시는 재림예수님을 증거 하는 실상의 말씀이 오늘날 구원받는 영원한 복음이다.
예수님은 사도요한을 통해서 다음과 같이 우리에게 경고하셨다.
계22:18~19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 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한마디로 예수님 재림 때 요한계시록을 가감하는 자들은 결단코 구원받지 못하고 재앙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요한 계시록의 예언에 예수님의 재림의 노정이 약속되어 있는데 이것을 모르고 있거나 잘 못 알고 있다가는 재림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하여 구원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론으로 신약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구원 받기 위해서 영원한 복음(신약 계시록의 예언과 성취)을 아는 것과 이것을 믿는 믿음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겠는가?